한참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음악은 한 잔의 향긋한 커피같았다.
이 순간에, 커피 한잔 마실래?,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아니!"
"......"
- 2012/01/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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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2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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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맞아, 내가, 내 양심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게 맞아. 내 양심을 발판삼아 뚝심을 갖고 사는 거야. 맞아, 맞아, 그게 정답이야."
이렇게 누군가의 힘에 의지하려고 했던 나를 문득 발견하곤 한다.
이런 삶의 모습은 비겁해서 쓸모가 없다.
"맞아, 내가, 내 양심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게 맞아. 내 양심을 발판삼아 뚝심을 갖고 사는 거야. 맞아, 맞아, 그게 정답이야."
이렇게 누군가의 힘에 의지하려고 했던 나를 문득 발견하곤 한다.
이런 삶의 모습은 비겁해서 쓸모가 없다.
- 2011/07/12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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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실하지 못한 편이다. 성실한 사람의 생활모습을 주위에서 목격할 때마다 칭찬해준다. 나는 갖고 있지 못한 어떤 면 즉, 나는 해내지 못하는 어떤 것을 갖고 있거나, 혹은 해낸다는 점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부족한 점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어떤 한 가지에 대해 강한 자극을 가지게 되면 푹 빠져든다. 자주 그렇지는 못하지만 하나의 현상이 마음속깊이 들어간다. 오직 그것 하나만을 생각한다. 그럴 때의 나의 현상은 성실함이라는 어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성실함, 성실하다, 는 영감에 의해 몸이 따른다기 보다는 작위적인 면을 갖는다. 영감에 의한 행위는 어떤 면으로 보나 자연스러워보일 수밖에 없다. 밖으로부터 힘을 받는다기보다는 안에서부터 깊이 차 올라오는 마음의 움직임에 따른 행위이다. 그렇다고해서 성실함으로 똘똘뭉친 행위, 이것이 무조건 마음과는 별개의 행위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형식에 의해 내용이 만들어지기도 하니까. 형식이 먼저 불렸든, 영감이 먼저 따랐든 상관없다. 형식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행동에 어느 순간 영감이 솟아나기도 한다. 나처럼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도입해야 할 방법론이다.
성실함은 온 마음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고 마음의 감화를 주기도 한다. 하나의 어떤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붓는 마음의 현상은 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밖으로 드러나 보이게 된다. 그렇게 속마음은 들키기도 쉽다. 그 하나를 위해 모아지는 정신력은 그 자체로 숭고함이 느껴지고 강한 빛을 발한다. -오랜만에 생각을 정리하려 하니 빤한 표현에 의지하게 된다. 흐흐- 무언가를 중심선상에 두고 마음을 모으는 경지가 본인에게는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그러나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영감만으로 버티기에는 쉽지 않다. 영감을 만나는 순간은 그야말로 너무도 짧은 순간이다. 영감은 번쩍하는 순간만큼이나 깜짝놀라는 순간만큼이나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때는 성실함이 관건이다.
영감은 전혀 없고, 성실함만이 남아 있다고 상상을 해본다. 같은 시간에 쓴 약을 물과 함께 목구멍속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끔찍한 상상이다. 거기에는 절실히 손에 쥐어야 하는 어떤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목적이 뚜렷하다고 자신을 속인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다. 성실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그러나 어떤 한 가지에 대해 강한 자극을 가지게 되면 푹 빠져든다. 자주 그렇지는 못하지만 하나의 현상이 마음속깊이 들어간다. 오직 그것 하나만을 생각한다. 그럴 때의 나의 현상은 성실함이라는 어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성실함, 성실하다, 는 영감에 의해 몸이 따른다기 보다는 작위적인 면을 갖는다. 영감에 의한 행위는 어떤 면으로 보나 자연스러워보일 수밖에 없다. 밖으로부터 힘을 받는다기보다는 안에서부터 깊이 차 올라오는 마음의 움직임에 따른 행위이다. 그렇다고해서 성실함으로 똘똘뭉친 행위, 이것이 무조건 마음과는 별개의 행위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형식에 의해 내용이 만들어지기도 하니까. 형식이 먼저 불렸든, 영감이 먼저 따랐든 상관없다. 형식에 의해 불러일으켜진 행동에 어느 순간 영감이 솟아나기도 한다. 나처럼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도입해야 할 방법론이다.
성실함은 온 마음을 집중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고 마음의 감화를 주기도 한다. 하나의 어떤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붓는 마음의 현상은 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밖으로 드러나 보이게 된다. 그렇게 속마음은 들키기도 쉽다. 그 하나를 위해 모아지는 정신력은 그 자체로 숭고함이 느껴지고 강한 빛을 발한다. -오랜만에 생각을 정리하려 하니 빤한 표현에 의지하게 된다. 흐흐- 무언가를 중심선상에 두고 마음을 모으는 경지가 본인에게는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그러나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영감만으로 버티기에는 쉽지 않다. 영감을 만나는 순간은 그야말로 너무도 짧은 순간이다. 영감은 번쩍하는 순간만큼이나 깜짝놀라는 순간만큼이나 오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할 때는 성실함이 관건이다.
영감은 전혀 없고, 성실함만이 남아 있다고 상상을 해본다. 같은 시간에 쓴 약을 물과 함께 목구멍속으로 밀어넣어야 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끔찍한 상상이다. 거기에는 절실히 손에 쥐어야 하는 어떤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목적이 뚜렷하다고 자신을 속인다.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다. 성실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 2011/04/2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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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소중한 순간인지.
자신의 내면을 풍성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에게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친구를 만나되, -이 대목에서는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느낌을 풍길 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서 만나라. 즉,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 될 수 있다. '충격'이라는 말이 거창한 표현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런 것만도 아니다. 늘 혼자서 지내다가, 그러니까, 내 마음 이외의 것들에 대한 오염이 전혀 없다가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의 말, 태도, 하나하나가 아니 그 자체가 자극, 충격이 된다. 재미있는 일이다. 사는 동안 그다지 재밌다는 일도, 자극적인 일도 없다는 느낌, 생각으로 일관하면서 살고 있다면, 그런 체험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생활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보다 만나지 않는 시간이 더 많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그랬다. 그러다가 나에 대해 궁금해지는 친구의 부름이 떨어진다.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한 그 친구의 부름을 받아들인다. 오랜만에 찾게 되는 친구의 공간, 큰 기대같은 것은 없다. 나의 방식 위주로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 또 그래야 내게 의미가 있고 의미를 떠나서 재미가 있다. 주변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바라게 되는 순간 나는 순수성에서 거리가 멀어진다.
매사가 재미있는 일 투성이다. 나처럼 생각하면 말이다. 가끔씩 만나는 사람, 그 자체가 내게 신선한 자극, 충격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상대방에게서 얻으려는 불순한 마음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내면을 풍성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자에게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친구를 만나되, -이 대목에서는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느낌을 풍길 지도 모르겠다-
나를 위해서 만나라. 즉,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 될 수 있다. '충격'이라는 말이 거창한 표현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런 것만도 아니다. 늘 혼자서 지내다가, 그러니까, 내 마음 이외의 것들에 대한 오염이 전혀 없다가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의 말, 태도, 하나하나가 아니 그 자체가 자극, 충격이 된다. 재미있는 일이다. 사는 동안 그다지 재밌다는 일도, 자극적인 일도 없다는 느낌, 생각으로 일관하면서 살고 있다면, 그런 체험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생활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보다 만나지 않는 시간이 더 많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그랬다. 그러다가 나에 대해 궁금해지는 친구의 부름이 떨어진다.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한 그 친구의 부름을 받아들인다. 오랜만에 찾게 되는 친구의 공간, 큰 기대같은 것은 없다. 나의 방식 위주로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 또 그래야 내게 의미가 있고 의미를 떠나서 재미가 있다. 주변사람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바라게 되는 순간 나는 순수성에서 거리가 멀어진다.
매사가 재미있는 일 투성이다. 나처럼 생각하면 말이다. 가끔씩 만나는 사람, 그 자체가 내게 신선한 자극, 충격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상대방에게서 얻으려는 불순한 마음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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